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서 4장 4~6절
이 말씀을 읽는데 호세아 선지자기 떠올랐다. 호세아는 음녀와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버리는 삶에 대한 계시의 글을 준 선지자였다. 나는 세상과 벗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벗은 내 안에 내밀한 것까지 나누는 사이를 뜻한다. 열왕기하에 아하시아 왕이 병들자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낮겠나 물어보는 이유는 하나님이 벗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벗은 바엘세붑 이었다. 왕의 불안과 두려움을 토로하는 자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신이었다. 이것이 세상과 벗된 자의 삶이었을음 보여주고 있는데, 신앙의 초기에 세상과 벗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지? 라는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일만 하고 싶어" 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그때는 그 말은 말씀을 전파하는 사역의 일이 하나님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린아이적인 믿음의 사고 였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사용하여 각자의 구원의 여정을 인도하신다. 많은 간증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에 있지않고 세상의 시스템을 쫓아 살았다는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간증의 나눔이 자신의 삶의 모습도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은연중에 스스로에게 부여 한 듯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로도 교사로도 복음 전하는 자로도 사도로도 각각의 부르심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명시했다. 또한 부르심이 복음 전하는 자의 삶의 간증 때문에 나도 복음 전하는 자로서의 삶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라는 규정을 짓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획일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기 때문에 각자에게 독특하게 인도하신다.
내 안에 규정지어 놓은 모습이 사라질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나의 일을 잘 바라보게 된다. 내 안에 규정지어 놓는 모습이 하나님을 제안하는 교만한 모습이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더욱 잘 드러내신다.
주님~ 오늘도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오늘의 삶의 모습에서 주님의 부르심과 뜻하심을 더욱 알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깨우침을 날마다 더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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