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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새 계명

by UrimStory 2024. 8. 17.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 13:34

 

하나님 께서는 새로운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예전에 함께 기도를 했던 분께 성경을 압축해서 한 단어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지를 물었다. 그분의 대답은 "보혈" 이었다. 그때 내가 원했던 답은 "사랑" 이었음이 기억난다. 

 

지금에서야 그 단어가 나온 이유가 십자가의 도 만을 강조했던  말씀 선포가 그 이유였거니 했다. 그러나 그때는 설명할 수도 "사랑" 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아직 내게 소화가 미숙한 단어이기도 했고 그분의 대답을 이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성경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두가지를 계속 가르쳐 주시고 계시지만, 도덕적 사랑과 긍휼한 마음으로 하는 사랑 이외에 신의 사랑에는 아직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내가 다른 추의 균형과 같은 다림줄 같은 것이었지만 육체는 항상 은혜를 본능적으로 좋아하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원하기 때문이다.

 

고난이 유익이 되는 것에 대하여 인정 하고 있지만, 그것을 감사로 받기에는 내 소욕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이다 

지금 까지의 내 사랑의 방식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이라는 제한이 항상 있었다.  그분의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게 하는 기도는 생각으로도 어떤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많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긍휼함을 사랑의 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가장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일반적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성경은 혼의 지정의가 있듯이 영의 지정의가 있어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영의 사랑을 내가 알게 된 경험을 허락하셔서 이게 그거군아 했던 기억이 있다.  내 생각으로는 절대 품을 수 없는 사람을 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험이다. 

 

날 아프게 하고, 날까로운 말로 비판하고 나를 뒤에서나 앞에서 비난했던 사람을 마음으로 품는 경험은 2주간의 하나님과의 격력한 기도 후에나 행동할 수 있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날 설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밀었던 카드는 "십자가" 였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그들을 율법에서 자유롭게 한 예수님은 자신의 유익을 선택하므로 그들의 비난 속에서 십자가를 선택했다. 그 십자가 앞에 내가 변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보혈을 사랑으로 기억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는 것을 사랑의 한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고 믿음의 선베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 그 사랑을 알기 위해 오늘도 난 오늘 하루를 주님께 질문드린다.

 

주님~ 오늘도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내 주변의 사람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을 오들도 깨닫게 하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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